성찬식 용어 및 성찬식 변화 종교음악 그리고 3교파의 성찬식 의미를 알아봅니다

성찬식 또는 성만찬 즉 주님의 만찬은 기독교의 성례전(또는 성사)중 하나이며, 최후의 만찬 때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여 빵과 포도주를 나누라고 하셨다는 복음서 말씀을 따르는 성례전 또는 성사가 성찬식이라 합니다
기독교인 저도 주기적으로 성찬식에 참여하며 예수님의 몸과 피에 해당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상천에 참여했습니다. 이번 연말 송구영신 예배와 함께 치러졌던 성찬식에 대해 한번 알아볼까 합니다

성찬식https://ko.wikipedia.org/wiki/%EC%84%B1%EC%B0%AC

성찬식 용어

  1. 성찬을 가리키는 다양한 표현이 있다.
  2. 성찬, 성찬례, 성만찬, 성찬식, 성체성사, 성체성혈성사, 성찬의 전례, 영성체, 주님의 만찬,파스카,성찬의 제사, 감사제 등이다.
  3. 성찬을 의미하는 영어 유커리스트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다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에우카리스테오의 파생 명사인 에우카리스티아에서 나온 전례 용어로 직역하면 “감사 예식”이라는 뜻이 된다.

성찬식 성경내용

  1. 마태복음/마태오 복음서 26:26-29, 마가복음/마르코 복음서 14:22-24, 누가복음/루카 복음서 22:19-20, 고린도전서/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1:23-26에서 찾을 수 있다.
  2. 성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린도전서/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이며, 예배때마다 가난한 교우들이 성만찬에서 소외되는 불평등을 주님의 성체를 욕되게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성찬식 변화

  1. 성찬예식은 초대교회 시기의 성경 말씀과 통합된 성찬으로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예식[2]에서 점차 보편교회 시기인 3세기와 4세기에 말씀과 분리된 예전으로 발전하였다.
  2. 성직자가 예전 처음부터 오로지 떡과 포도주를 들고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예전을 진행하고, 성도들은 뒤에서 십자가와 잔을 든 성직자의 뒷모습만 보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성찬 순서에 따라 성직자는 성도들에게 떡과 포도주 분배시에만 돌아서고 성찬식은 다시 십자가를 향한 기도로 마무리되었다
  3. 성찬예식은 5개 지역의 연합체인 공교회 즉 로마제국의 천도로 형성된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중심하여 구체적인 예식으로 발전하였고, 서방교회는 헬라어로 작성된 동방교회의 성찬 예식을 라틴어 번역과 그에 따른 성찬곡의 변화 수준에서 서방교회 성찬예식, 즉 서방교회 성찬예식의 성찬 전통이 형성되었다.
  4. 서방교회 역시 성직자의 집례는 성도들보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동방교회의 예식을 따랐고, 서방교회에서는 점차 떡을 주되 포도주는 주지 않는 형태가 되었다

성찬식 종교음악

  1. 서방교회 내에서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개신교 성직자가 공동의 성찬 즉, 성직자가 성도들을 바라보고 떡과 포도주를 함께 나누는 성찬을 집례하기 시작하였고, 개신교 교회는 점차 예배와 교회 문화적으로 바흐, 헨델과 같은 작곡가들과 성찬식을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개신교회음악을 발전시켰고, 초대교회의 전승을 따라 십자가만을 향하기보다 성도들을 향한 성찬예식을 발전시켰다.
  2. 매주 또는 매달 시행하는 성찬예식은 성도를 향하고, 떡과 포도주를 성직자와 성도가 함께 나누는 성찬예식은 새로운 교회 음악과 서방교회 전반의 성찬예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3. 개신교회의 성찬 운동과 18세기 감리교회의 매주 성찬 권고를 필두]로 다른 개신교회에서도 성찬인식 변화가 일어났고, 19세기 천주교회는 1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매주 성찬을 나눌 것을 권고하였고, 20세기 1964년 2차바틴칸 공의회에서 천주교회에서도 성찬을 기존 십자가를 향한 로마전례에서 성도들을 향한 성찬전례로 바꾸었고, 현재의 천주교회의 성찬 예전의 기준이 되었다.
  4. 1960년대말에 2차바티칸 공의회가 권고한 새로운 성찬예전과 미사 방식, 성직칼라셔츠를 포함해 개신교회의 영향이라고 거부감을 갖는 사제들의 반대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5. 1986년 WCC에서 작성한 리마예식이 동서를 막론하고 전세계 교회의 성찬예식의 기준으로 제시되어 활용되고 있다.

로마카톨릭 성찬식

  1.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13세기에 교리화한 화체설을 따른다.
  2. 성체성사를 그리스도의 죽음을 재현하는 희생의 제사로 보며, 예수가 스스로 자신의 살을 빵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여 사제가 축성한 제병(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실체변화를 믿는다.
  3.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제의 축성으로 변한 그리스도의 성체에 경배를 표하는 성체조배를 한다.
  4. 일반적으로 평신도는 성혈을 받아 모시지 않았는데 이 당시에도 사제는 언제나 빵과 포도주를 둘 다 모시는(영하는) 양형 영성체를 했다.
  5. 현대 가톨릭교회에서는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평신도들에게도 양형영성체를 하도록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미사에서 회중들의 일반적인 영성체 방식은 교회의 전통을 따른 단형 영성체이다.
  6. 19세기 1차 바티칸공의회의 교령에 따라 매일 전 세계에서 동일한 양식으로 미사를 하며, 미사 중간에 영성체를 하고 있다. 매해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주일을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로 지낸다

동방정교회 성찬식

  1. 동방 정교회에서는 예수께서 감사의 성만찬 성사를 정하셨다는 복음서와 바울로의 주장에 따라 성찬을 예배의 중심으로 이해한다.
  2. 기념설에서 거룩함을 강조한 형태로 등장하였다.
  3. 초기 기독교와 교부들의 전통에 따라 그리스도와 참된 교제의 신비로서 성만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관상할 수 있다는 상징적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4. 8세기에 이르러 이콘반대주의가 전개되면서 실재론적 입장서 성찬에 대한 견해에 변화가 나타났다.
  5. 니케포로스가 성찬이 인간적 몸으로 변형한다는 주장한 이후 성체와 성혈이 된다는 입장이 널리 수용되었다.
  6. 이 변화는 서방교회의 “화체”가 아니라 역동적 의미의 변화인 성육화, “메타볼레”를 용어로 사용한다
  7. 11세기 서방교회와 성찬 제병 논쟁에서 일상적인 누룩이 든 빵이 생동하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상징하며, 일상적 빵이 참된 성육화라고 보았다.
  8. 빵이라는 헬라어 단어 ‘아르토스’가 ‘누룩 있는 것’을 의미하며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이 오기 전인 성 목요일(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 무교병(누룩 없는 빵)을 먹기 전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9. 성찬예배를 집전하는 사제가 성도들에게 포도주를 직접 떠서 먹임으로써 제병과 포도주를 정교회 사제와 신도가 모두 받는다

개신교회 성찬식

  1. 개신교의 성만찬에서는 반드시 모든 성직자와 성도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와 살을 의미하는 떡을 함께 나눈다.
  2. 개신교회에서 성만찬의 기념은 단순히 기억하고 전례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3.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고 감사하며, 주님의 도래를 기억하고, 성령의 활동을 통해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4. 개신교의 성만찬 이해는 성서에 따라 사도 바울로의 서신과 누가 복음서에 나온 기념의 개념이다.
  5. 기억, 회상, 재현, 새롭게 경험함”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과 마음으로 생각나게 하는 것, 상황에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한다.
  6. 개신교회의 “기념”의 성찬식은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성만찬을 제정하시던 순간에 성별된 빵과 포도주에 지금도 참여하여 늘 새롭게 경험하게 하는 온전한 기념의 과정이라고 본다.
  7. 성만찬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현대에 와서도 발전하여 에큐메니컬 성만찬 곧 교회일치 운동으로써 가시적 일치를 이루려는 그리스도인들의 성만찬을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8. 성직자가 십자가를 뒤로 하고 성도를 향해 서서 성찬을 집례하는 방식은 초대교회의 성찬을 되찾으려는 개신교회의 노력으로 16세기에 형성되었다.
  9. 성찬은 성직자가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집례하는 방식이었다.
  10. 개신교회만이 아니라 1960년대 천주교회에서도 수용하였다.
  11. 서방교회 전통의 교회들은 성직자가 성도를 바라보며 성찬을 집례한다.

성찬식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살과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또한 체험하는 귀한 시간임을 잘 압니다. 즉 우리를 위한 감사예식임을 잘 알고 2024년에는 더욱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예수님의 삶대로 서로 사랑하며 지내보리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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