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황금색 색깔의 탐스러운 귤을 잘랐을때 톡톡튀는 알갱이 보는것만 해도 상큼하고 싱그러운 귤 귤의 계절이 왔습니다. 추운 날씨 만큼 새콤한 귤에 이가 얼얼할 정도로 먹고 손바닥이 노랗게 변할정도로 밤새 까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귤의 종류와 보관상 유의사항 그리고 귤 특징 귤의 역사 귤을 맛있게 파는 판매처등 낱낱히 세세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귤 종류
- 온주밀감(윈저우밀감)
-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감귤이다.
- 흔히 노지감귤로도 불린다.
- 반대로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면 하우스감귤로 부른다.
- 풋귤
- 덜 익은 온주밀감이며 겉은 초록색을 띠고 있지만 속은 노란 감귤색을 띤다.
- 맛은 시지만 대신 기능성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 탁구공보다 크기가 작고, 잘 익은 감귤과 달리 껍질이 단단해 손으로 까먹을 수가 없어 생으로 먹기보다 설탕에 절여 청으로 만든다.
- 수확철은 8월 초순부터 9월 중순까지이다.
- 진귤
- 크기는 온주밀감보다 조금 작고 껍질은 거칠고 산미와 향기가 조금 강하다.
- 향기와 맛이 독특해 과거의 귤 종류 중에서 상위였다고 한다.
- 빈귤
- 청귤
- 제주도의 고유종이다.
- 현재는 시중에 나오지 않고 유전자원 보존용으로만 키우고 있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시중에서 접할 수 있는 청귤차 등에 들어가는 것은 고유 품종인 토종 청귤이 아니라 사실 풋귤 혹은 영귤(스다치)이다.
- 병귤
- 과실부가 돌출되어 다른 재래종 귤과 구별이 잘되며
- 제주어로 벤줄이라고도 불린다.
- 산귤
- 편구형으로 껍질에 얕은 돌기가 있고 열매의 크기는 작으며,
- 제주어로 산물이라고도 불린다.
- 동정귤
- 멸종으로 착각된 재래종 귤이며 향이 유자처럼 강한것이 특징이다.
- 광귤
- 하귤
- 여름에 나는 귤이다.
- 원래는 일본이 원산지이나 현재 제주도에서도 많이 재배되고 있다.
- 사두감
- 인창귤
- 만다린
- 미국의 품종. 한국 귤에 비해 당도가 높으며 껍질이 두껍다.

귤 보관상 유의사항
- 귤이 썩으면 특유의 녹차색 곰팡이가 핀다.
- 관리를 잘해도 썩은 것이 섞인 박스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유통과정에서 박스채로 욱여넣고, 던지고 하다보니 내상을 입기 때문이다.
- 햇빛이나 조명을 받으면 더 빨리 썩고, 습도가 높아도 역시 빨리 썩는다.
- 농장에선 귤을 상자에 담을 때 손톱이 길어 자기도 모르게 흠집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 귤을 보관할 때는 상하거나 상처가 있는 것, 말랑말랑한 귤을 골라내 먼저 처리하는 것이 좋다.
- 실온에서 박스 채로 보관할 때는 박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간격을 둬 담고 직사광선을 피하고 통풍이 잘되는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 냉장고 또는 김치냉장고에 보관할 때는 통풍이 잘되도록 보관용기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서로 부딪히지 않게 간격을 두어서 귤을 담는다.
- 장기보관의 경우는 냉장고가 좋다.
- 귤을 세척할 때는 귤이 잠길 정도의 물에 베이킹소다 또는 소금을 두 스푼 정도 물에 넣고 녹인 후, 귤을 5분 정도 담갔다가 깨끗한 물로 헹궈 물기를 닦아주면 된다.
- 귤도 숨을 쉬며 습기를 내뿜기 때문에 통풍이 안 되면 습기가 차 쉽게 썩는다.
- 수시로 마른 걸레로 닦아주면서 썩거나 썩기 시작한 귤을 골라내 주면 보관 기관이 늘어난다.
- 너무 오래 보관하면 겉으론 멀쩡하지만 속에서 말라 비틀어지기 때문에 두 달 넘게 보관할 생각 말고 빨리 먹어서 없애야 한다.

귤 역사
-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안영은 귤이 회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는데 이를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남귤북지이다
- 삼국지의 등장인물 육적은 모친을 위해 원술의 귤을 빼돌린 회귤유친의 일화가 유명하다.
- 우리나라에서는 귤을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해왔으나 한반도 본토에서 기르기 힘들어, 제주도 정도를 제외하면 왕족이나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 탐라지에 따르면 백제 문주왕 2년(476) 탐라국에서 지역 특산물로 귤을 바쳤다고 하며,
- 고려사에 고려 문종 6년(1052)에 탐라국에서 세금으로 받아오던 귤의 양을 늘린다는 부분이 있어 이때부터 귤을 진상했음을 알 수 있다
-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태조 원년(1392)부터 공물 기록이 계속 나온다.
- 세종 8년(1426)에는 호조의 게시로 전라도와 경상도 남해안에 유자와 감자를 각 관서에 심게 했다고 한다.
- 세조실록 2권에는 ‘감귤은 종묘에 제사지내고 빈객을 접대함으로써 그 쓰임이 매우 중요하다’는 기록도 있어 당시 귤이 그만큼 귀했음을 알 수 있다.
- 귤을 왕실 전용 온실에서도 길렀다는데 세종대왕이 총애하는 후궁한테 직접 귤을 준 이야기, 문종이 집현전 학사들에게 귤을 내렸는데 학사들이 귤보다는 접시에 문종이 친필로 쓴 시를 더 탐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매년 황감제라 하여 성균관 유생들에게 감귤을 하사하고 치른 시험도 있었다.
- 조선시대의 제주도산 귤 품종과 현재 제주귤 품종은 다르다
- 제주도 및 남해안에서 기르는 귤은 다 진상품으로 바쳐야 했는데, 정약용의 기록에서 여름에 귤이 녹색으로 작게 열리면 나무둥치에 몇 개인지 표시해 놨다가 귤이 익으면 그 양만큼 바쳐야 해서, 바람에 떨어지거나 하면 다른 곳에서 사서 바쳐야 하는 등 그 부담이 컸다고 한다.
- 관리들의 수탈도 있어서 결국 이에 시달리다 못한 농민들은 일부러 귤나무를 죽이기도 했다.
- 제주도민들이 좋은 토종귤 품종을 다 죽이다보니 토종귤의 품질이 낮아졌고, 개량종에게 자연스럽게 밀려난 뒤에는 현재도 제주 전통귤은 그 명맥을 잇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보기 힘들지만 한방에서는 약귤이라고 토종귤을 쓰기도 한다.
- 제주 재래귤 품종 가운데 하나인 동정귤은 멸종했다고 알려졌었으나 애월읍 광령리에서 수령이 200년이 넘는 나무가 한 그루 발견되었다.
- 제주 4.3 사건 때 불나서 고사할 뻔했다고 한다
- 제주도의 토종귤로는 청귤이 있는데 고려시대부터 자생해온 재래종으로 추정한다.
- 시중에 나오지 않고 감귤연구소나 감귤박물관에서 보존용으로 10그루 내외만 자생한다.
- 우리가 자주 먹는 귤 품종은 중국 저장성의 원저우 밀감이며 일본 규슈로 건너가 씨가 없는 감귤로 개량된 품종으로 재일교포들이 친척에게 보내준 묘목에서 조금씩 생산하기 시작해 제주를 대표하는 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산 귤이 유통되었으나 그 이후 일본산 귤이 수입되지 못한 영향이 컸다.
- 제주도에 원저우 밀감을 도입한 사람은 20세기 초 프랑스 출신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에밀 타케신부다
- 1911년 타케 신부는 일본 아오모리에서 선교하는 위르뱅 포리 신부에게 왕벚나무 묘목을 보낸 답례로 온주밀감 묘목 14그루를 받아
- 현재 서귀포시 서홍동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면형의 집’에 심었다
- 제주에서는 에밀 타케 신부가 심은 때를 기해 제주 감귤 100주년 행사를 기획한 적도 있었다
- 타케 신부의 온주밀감이 잘 크는 것을 본 일본인 미네가 1913년 온주밀감 2년생 묘목을 도입, 현재 제주농원인 서귀읍 서홍리에 심어 대량 상업화를 시도한다.
- 일본인 미네는 조선인 박영효와 함께 온주밀감뿐 아니라 워싱톤 네블, 하밀감등을 1910년경 전파하면서 1920년부터 매년 귤나무 7천~8천 본이 일본에서 제주로 유입되었다고 한다.
- 다양한 종류의 감귤 묘목이 제주에 도입되었지만 농가에서 재배가 활성화되지는 않았고 정원수로 몇 그루 정도 심어진 것에 그쳤다고 한다.
- 일본인 중심의 농민회가 감귤 묘목을 나눠주며 생산량을 늘리려 했지만 이미 일본에서 생산된 감귤이 자유롭게 들어왔기 때문에 제주감귤이 비싼 값을 받을 수 없어 판매 판로가 뚫리지 않았다고 한다.
- 1945년 광복 이후 우장춘 박사가 감귤의 품종 개량을 시도하였지만 한국 전쟁으로 혼란한 와중에 무산되었고, 제주에서는 1948년 제주 4.3 사건이 터지면서 농민들이 생활터전을 잃어 감귤재배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고 1955년에야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감귤묘목이 도입되었다.
- 제주도의 감귤재배가 확산되는 계기는 1964년 2월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순시에서 제주도의 감귤을 중점적으로 키우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 이듬해 1965년부터 감귤심기 붐이 일어났다.
- 박정희 정부는 일본 농림성으로부터 감귤 묘목을 수해 농가에 보급하였다.
- 과거 귤나무는 키가 커서 사다리를 타고 귤을 수확해야 했는데, 현재의 관목처럼 키가 작은 귤나무는 바로 이때 일본에서 도입된 것이다.
- 1975년 제주도 감귤재배면적이 1만 ha에 달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2만 5000여 ha에 감귤 생산량은 60만 톤에 이르렀다.
- 이후 생산량은 60만 톤 내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 1980년대에는 일본에서 ‘스다치’라는 품종이 제주도로 들어왔는데 제주도의 옛 이름 영주를 따서 영귤이라고 불렀다.
- 귤은 크기는 탁구공만 하고 겉껍질이 초록색이라서 청귤, 풋귤과 헷갈릴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른 감귤 품종이다.
-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북한에 감귤보내기 사업을 하기도 했으나 2010년 북한이 천안함 피격 사건을 일으킨 이후로 중단되었다.
- 2012년 한미 FTA가 발효되면서 미국산 만다린의 관세율이 2012년 144%에서 점점 낮아져 2021년 기준 48%까지 내려갔고 2026년 완전 철폐 예정이라 제주도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때 북한이 선물로 보내줬던 송이버섯 2톤의 답례로 청와대에서 귤 200톤을 공군 수송기를 이용해 보냈다.
- 북한에서 귤은 기후때문에 재배가 불가능하다.
- 중국에서 귤을 수입해 먹는데, 중국산 귤은 북한 기준으로 가격대가 비싸기 때문에 아무나 못먹고
- 평생 못 먹어보는 경우도 많다.
- 선물용으로 애용된다

귤 설명
- 맛있는 귤을 고르고 싶거든 꼭지 주변이 쭈글쭈글한지 땡땡한지 잘 살피는 게 좋다.
- 쭈글쭈글한 귤은 귤껍질과 과육 사이에 공간이 약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귤이 상대적으로 덜 시며 말랑말랑하고 껍질 또한 잘 벗겨진다.
- 귤을 먹기 전에 귤을 고르게 주물러 주면 에틸렌 성분이 나와 단맛이 강해진다고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중에 파는 귤은 이미 숙성이 다 된 귤이라 소용이 없다고 한다.
- 그래도 주무르면 더 달다고 느낀디면 플라시보 효과이거나 귤 안에 있는 신 성분이 고르게 퍼져 그럴 수 있다고 한다.
- 귤의 크기를 나타내는 명칭은 0~10번과식 11단계에서 2S~2L과식 5단계로 줄어들었다.
- 2015년 9월의 일이다. 물론 이전 규격은 2~8번과가 주로 유통이 됐다.
- 보통 귤은 작을수록 맛이 진하며 가격이 높다.
- 귤 수명의 구분 방법은 만졌을 때 물렁할수록 수명이 짧다.
- 이유는 귤은 시일이 지나게 되면 알맹이와 귤껍질 사이가 헐거워지기 때문이다.
- 시간이 지날수록 달고 까기 쉽다.
- 귤을 먹다 보면 손이 노랗게 물든다.
- 이것을 해결하려면 비누나 베이킹소다로 손을 씻으면 된다.
- 식초는 효과가 없다.
- 귤을 많이 먹으면 색소가 피하지방층에 저장되어서 얼굴과 손바닥, 발바닥 등이 노랗게 변하게 될 때도 있다.
- 가성황달의 예시로 자주 언급되는 것인데, 좀 지나면 색이 알아서 빠지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 귤의 하얀 부분(귤백)을 까먹을 때 실온에 내버려두면 겉부분이 말라서 까기 쉬워진다.
- 속은 멀쩡하다. 귤은 데운 다음에 차갑게 만들면 단맛이 더 진해진다.
- 귤을 먹을 때 한쪽으로만 씹으면서 먹으면 신맛에 타격을 심하게 받지는 않는다.
- 귤을 깔 때 부스러기가 나오는데, 이를 예방하려면 가운데를 손톱으로 가르고 양 껍질을 잡고 돌려주면 웬만해선 깔끔하게 떨어져 나온다.
- 단단한 것은 안될 확률이 높다.
- 양치질을 한 직후에 먹으면 몹시 쓰거나 신 맛을 느낄 수 있다.
- 자세히 적자면, 미묘하게 신맛에 치약맛을 더하고 거기에 쓴맛까지 결합한 맛이다. 양치질 후에도 입 안에 남아 있는 치약 성분이 혀의 미각세포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 귤을 까놓고 먹지 않으면 과육의 겉부분이 말라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귤껍질로 다시 감싸주고 기다리면 다시 원상태로 촉촉해지기 때문에 만약 귤을 먹다가 남기게 되었으면 귤껍질로 촘촘히 덮어서 보관하면 된다.
- 귤에 자주 피는 곰팡이는 두드러기, 발진 등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
귤은 겨울철 쉽게 손이가는 과일중 하나이다. 그 만큼 계절과일로써 맛과 영양 그리고 가격까지 서민층이 접하기에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인듯. 쉽게 아는 타이백 감귤 종류에 대한 개념정리가 안돼 아쉽지만 우리나라 귤 역사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듭한것을 알수 있다. 북한에서 접하기 어려운 고급 과일이라 하기에 통일이 되면 양껏 귤을 먹기 바래본다